데이비드 호크니 현대미술의 거장 이야기 3 에칭 작업 후 더 큰 첨벙 수영장 연작까지의 과정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
초기 런던 시절의 정교하고 실험적인 판화 작업에서 출발해 눈부신 로스앤젤레스(LA)의 태양 아래 탄생한 세기의 명작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매혹적인 진화의 과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평면적인 선 위주의 작업에서 거대한 현대 미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기까지,
그가 거쳐간 단계별 발자취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겠습니다.
1단계: 런던 시절, 선과 서사가 중심이 되던 에칭과 펜화의 시기
호크니가 초기 왕립예술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는 주로 판화 매체인 에칭과 드로잉 펜화를 즐겨 다루었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화려한 색채보다는 섬세하고 예민한 선(line)과 문학적 내러티브,
그리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데 집중되어 있었죠.
에칭 특유의 날카롭고 부식된 선들은 세상을 관찰하는 그의 초기 시선을 고스란히 대변했습니다.
화면은 주로 절제된 색조를 띠었으며,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을 연필과 판화 기법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실험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 시절만 해도 그의 화면은 비교적 연극적이고 서사적인 구조를 단단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2단계: 캘리포니아와의 운명적인 조우와 '수영장'이라는 새로운 영감
1960년대 중반, 호크니는 영국의 우울하고 궂은 날씨를 뒤로하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전격적으로 옮깁니다.
그곳에서 그는 집집마다 개인 수영장이 있는 이국적이고 여유로운 풍경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영국에서의 묵직하고 복잡한 서사 대신, LA의 찬란한 빛과 모더니즘 건축 양식,
그리고 수영장의 투명한 물결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호크니의 관심사는 선 위주의 드로잉에서 본격적인 '빛과 물'의 회화적 탐구로 대전환을 맞이하게 됩니다.
3단계: 인물과 공간의 결합 — <닉 와일더의 초상화>를 향한 과도기

본격적인 수영장 시리즈로 완전히 넘어가기 전, 호크니는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환경 속에서 주변 인물들과 그들이 가진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화폭에 담는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결정판이 바로 <닉 와일더의 초상화(Portrait of Nick Wilder, 1966)>입니다.
당시 LA 아트씬의 중심에 있던 갤러리스트이자 호크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닉 와일더가 수영장 물속에 반쯤 몸을 담근 채 나른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관람객을 응시하는 이 작품은,
에칭이나 펜화 시절의 복잡하고 연극적인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공간과 인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줍니다.
반짝이는 수면의 파문과 인물의 그림자, 선명한 건축적 구도가 어우러지며 호크니는
훗날 '물'이라는 찰나의 대상을 화면에 붙잡아 두기 위한 회화적 기술을 차근차근 다져나갔습니다.
4단계: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다 — 찰나의 순간을 향한 집요한 포착
캘리포니아의 수영장은 호크니에게 늘 정지된 평온함과 역동적인 찰나가 공존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수영장에 몸을 던지는 순간 발생하는 물보라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호크니에게 사진은 그저 완성품이 아니라,
영감을 얻고 회화적 구성을 연구하기 위한 보조 도구에 불과했죠.
눈으로는 순식간에 지나쳐 버릴 다이빙의 순간
즉 물이 튀어 오르는 2초간의 형태를 화폭에 영원히 박제하고 싶어 했습니다.
에칭의 예민한 손맛에서 완전히 벗어나, 이제는 거대한 공간감과 팝아트적 감수성을 결합하는 실험이 무르익어 갔습니다.
5단계: 마침내 탄생한 거대한 물보라, '더 큰 첨벙'

이러한 치열한 시각적 실험의 총화가 바로 1967년에 완성된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입니다.
이 작품에서 호크니는 건물과 수영장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배경은 페인트 롤러를 사용해 아주 평평하고 매끄럽게 밀어냈습니다.
반면, 단 2초 만에 사라지는 물이 튀는 역동적인 순간을 그려내는 데는 무려 2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세밀한 붓질을 수없이 겹쳐 올려 정적인 공간 속에서 폭발하는 물보라의 입체감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물을 재현하는 새로운 기호의 재치있는 창안, 강력한 디자인적 감각과 대담한 색채, 그리고 관찰된 장면이
거의 추상에 가까운 회화의 구성에 사용되는 유희 넘치는 방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가장 오래도록 남는 것은 이미지에 감도는 정적입니다.
이 더 큰첨벙 작품은 두 개의 시간 축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처음 ㅂ행위가 일어난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캔버스 위에 옮긴 시간입니다.
이 둘의 상호작용이 작품 특유의 강렬함을 낳는 거 같습니다.
에칭과 펜화 속의 가늘고 예민하던 선들은 이제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 시원한 아크릴 물감과 거대한 캔버스로 확장되어,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정교한 드로잉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의 해방감과 인물 중심의 구도를 거쳐 찰나의 미학으로 완성된 이 여정은,
호크니가 왜 시대의 거장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